아나키스트이자 사회학자인 석학 김성국 교수는 인공지능의 등장과 함께 급변하는 사회 변화의 물결에 마주서서 사회과학과 사회학의 변신을 시도한다.
그는 유불도선의 아나키즘적 차원을 연구하여 독창적인 <하나논리>를 수립한다. 서구 이론의 수준을 능가하는 동아시아 아나키즘 이론을 새로이 정립한 결과로서의 그의 <하나논리>는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로서의 하나를 지향한다.
<하나논리>라는 방대하고도 획기적이며, 혁명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이론을 건설한 김성국 교수는 이 역사적 저서의 에필로그에서 김주완의 시 「구름 요리」 전문을 인용하여 그의 하나논리와 연결시키는 화답 풀이를 한다.
그 에필로그를 여기에 옮긴다,
(<에필로그:구름 요리와 신선놀음>, 김성국, 『하나논리』-동아시아 사회이론의 모색, 서울:이학사, 2023.2.28., 383-387쪽.)
에필로그:
구름 요리와 신선놀음
동아시아 지혜는 한결같이 말은 도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말 많은 것을 특히 경계한다. 그래서 『천부경』은 81자로 최대한 말을 줄이고, 『도덕경』도 81장으로 압축하고자 하였나? 그러나 천하 백성들에게 이를 쉽게 풀이해주고자 불가피하게 유불도선 모두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는 가능한 한 말을 아끼되 깊은 뜻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한다. 내 존경하는 이념의 스승 하기락의 제자이자, 나의 경외하는 친구, 탐미와 심미 그리고 유미의 철학자 시인 김주완(2018) 1 교수의 시 한 수를 인용한다. 그의 시는 언어의 묘로써 하나논리를 표상한다. 그의 시적 언술은 동아시아 지혜의 어떤 신비로우면서도 정다운 아름다움으로써 나의 하나논리를 멋있게 감싸준다. 2
구름 요리
― 사람이고자 하는 사람은 구름 요리를 먹고 구름처럼 산다
김주완
물들어
석양녘에 떨어져 나온 한 덩이 구름 같은
정구지 장떡에는 허리 꺾인 정구지 심이 들어 있다
반은 검게 숨죽은 잎이 된장의 늙은 핏줄 같은데
내림 음식을 떠받치는 자존심은 맵고 차져서 윤기난다
멀건 갱죽에도 구름자락 한 움큼 훑어다가
비벼 넣는 종부는 어린 손자에게 여물처럼 꿈을 먹이고
배탈도 안 나는 부푼 소망을 떠가는 구름 위에 올렸다
살강에 얹어 놓은 보리밥 소쿠리에 젖은 모시 보자기 덮으면서
바라본 대비질한 하늘가에 깔린 쌀가루 가지런했다
채친 무에 고춧가루 양념 넣어 무생채 무치는 종부의
마디 굵은 손으로 떠받치는 종가
된장 간장에 정구지 넣고 구름으로 버무려
어둡도록 장떡 굽는 부엌 바닥에 풀풀 잿불 날린다
부엌문 밖 처마에 십오 대 중시조가 드시던 구름자락 걸린다
이 멋진 온고창신(溫古昌新)의 시에 어설프기 그지없으나 화답 풀이를 아니할 수 없다.
신선놀음
― 깨달음의 길을 걷는 사람은 구름 요리를 먹고 신선처럼 산다
구름 요리는 하나논리이다
천지인합일의 요리이다.
하는[天}의 구름 한 자락과
지상[地]의 정구지가
종부[人]의 굵은 손마디를 만나[合]
정구지 장떡 하나[一]로 만들어진다.
장떡에는
잡종화(雜種化)도, 유아유심(唯我唯心)도, 중도자비(中道慈悲)도 있다.
비벼 넣고, 무치고, 버무리는 잡종화
여물 같은 꿈과 배탈도 안 나는 부푼 소망의 유아유심
중도자비는?
시인은 숨겨둔다.
구름 요리 먹는 사람 절로 그 길 찾는다.
보리밥 소쿠리에 젖은 모시 보자기에서
보리밥(흑)과 모시(백)는
소쿠리를 감싸는 보자기에 의해서 절묘한 중도를 이룬다.
풀풀 잿불 속 어둡도록 만든 찰떡같은 장떡 궁합이니
애정(愛情)과 애정(哀情)이 물씬한 자비, 아닌가
동아시아 지혜의 상징이자 조선 선가의 역사인
종가와 십오 대 중시조, 그리고 내림음식은
주체적 인간의 표상 같은 종부가 지탱한다.
맵고 차져서 윤기 나는 종부의 자존심은 주체성의 본심(本心)이다.
마디 굵은 손이 종부의 일심(一心)을 증언한다.
정구지 심은? 그 심도 정구지의 유심(唯心)이다.
사람이고자 하는 사람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다.
구름 요리 먹고
하나논리의 천지인합일을 이루고
구름처럼 산다
신선처럼 자유롭게 노닌다.
임인년(壬寅年) 초추(初秋)
굴곡진 역사의 땅 왜관을 찾아
풍류 시인 김 선생을 만나
구름 요리 나누며
정 도령과 더불어 삼가정승(三可政丞)의 안현안락(安賢安樂)을 논하니
신선놀음 따로 있으랴.
세 사람이 모였으나 천지 속으로 사라지니
삼신삼선(三神三仙) 삼일논리(三一論理)의 조화였나.
독자 여러분께서도 하나논리의 표상(表象) 혹은 육화(肉化)인 장떡 구름 요리의 풍미를 즐기셨으면 합니다.
- 김주완은 하기락으로부터 철학박사논문 지도를 받았고, 구도의 철학자 시인 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다. 하기락과 구상은 절친한 벗이었다.(김인숙, 2022:70~73). 나는 하나논리의 이론적 특성으로서 ‘허유적 허무주의’(제5장 1절, 각주 5)를 논의하면서 하기락의 호인 ‘허유’를 도가 및 러시아 니힐리스트 아나키즘의 허무주의적 맥락과 관련하여 지적하였다. 최근 김주완(2022b: 150)은 “구상 강문학의 존재론적 본질”을 하이데거와 하르트만의 관점에 입각하여 분석하면서 구상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김주완, 2022b: 65)에서 ‘허무(虛無)의 실유(實有)’라는 대단원(大團圓)의 의미 함축에 주목한다. ‘허무의 실유’를 압축하면 ‘허유’이고, 불가적으로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이며(장윤수, 2022: 129), 하나논리의 허유적 허무주의와 연결된다. 구상은 그의 시에서 불이문(不二門), 선정(禪定), 윤회, 무상, 무아(無我)나 염화(拈華)와 같은 불가적 용어도 자유롭게 사용한다.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구상의 시를 분석한 장윤수(2022: 107, 124-129)가 지적하듯이 구상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지만 유불도, 특히 불가에 깊이 침잠하여 “불교적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동서 사상을 하나논리의 통일(通一)처럼 “원래 하나인 진리의 조화를 의미하는 원융회통”의 정신에 접맥시키려 한다. “회통이란 대립과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 하나에로의 만남을 의미한다”(김종문∙장윤수, 1997: 51-52). 구상의 시는 ‘하나’라는 실재를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구상은 “시는 모름지기 표상과 실재가 일치해야 한다”(김주완, 2022b: 154)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시아 체용론의 묵시적 당위이다. [본문으로]
- 김주완(2022a: 180-183)은 유와 무에 관한 하나논리의 관점(제3장 3절)인 ‘없음(無)이라는 있음(有)’을 지지한다. 그에 의하면 “존재는 ‘있음’이다. … ‘있는 것(유)’이 있듯이 ‘없는 것(무)’도 있다. 그러므로 무도 존재이다. 무는 없음으로서의 있음이다.” 흔히 최상위의 존재자를 지칭하는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란 ‘있음(존재)’ 그 자체라는 의미에서,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다는 하나논리의 해석은 타당해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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