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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제 2 수필집 <봄날은 꽃비 되어>

김주완 2021. 6. 9. 21:12

이연주 수필집 <봄날은 꽃비 되어>

저자 : 이연주

펴낸곳 : 북랜드

인쇄 : 2021년 5월 25일

발행 : 2021년 5월 30일

판매가 12,000

이연주 제2수필집 앞표지
이연주 제2수필집 뒷표지

 

작가 약력

 

<작가의 말>

 

꽃비 내리는 화창한 봄날

만개한 벚꽃들이 하늘 가득 춤을 추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꽃그늘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저의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입니다.

남기고 싶은 풍경이 있을 때, 꽃향기가 발걸음을 붙들어 세울 때, 기억하고 싶은 맛이 느껴질 때,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가슴을 파고드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올 때 저는 언어라는 물감과 감성이라는 붓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그림을 그립니다.

 

저의 그림은 유치할 수 있습니다.

유치(幼稚)어리다는 말입니다. 어린 것은 순수합니다. 순수는 텅 비어 있는 것이어서 모든 것을 들일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합니다. 순수는 가난한 마음이어서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순수는 외적으로는 무력하지만 사실은 가장 강한 힘입니다. 순수한 눈망울 앞에서 세상의 모든 악은 퇴색해 버립니다.

 

저의 글은 유치할 수 있으므로 저는 무치(無恥)해도 좋을 것입니다. 자기변명이며 자기합리화라 해도 좋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날마다 강녕하시며 일마다 복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힘들지라도 내일이 있어, 오늘은 오늘의 숨을 쉽니다.

 

 

20214

이연주

 

<표제 수필>

봄날은 꽃비 되어

 

벚꽃 잎이 하르르 떨어져 내린다. 한 잎, 두 잎 떨어져 내리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바람이 불 때 꽃비가 되어 화르르 날리는 모습이야말로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사선으로 쓸려 내리는 하얀 벚꽃 잎들은 공중에서 지상으로 내려앉는 나비떼 같다. 국어사전에서는 <꽃잎이 비가 내리듯 가볍게 흩뿌려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꽃비>를 정의한다. 언어적 규정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면서도 완전하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꽃비에 비하면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한 설명이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했던가. 꽃비 중에도 최상의 꽃비는 벚꽃 잎이 날리는 꽃비이다. 꽃잎의 크기도 크지만 떨어지는 양도 많다. 꽃이 본래적으로 풍성하고 화려하기 때문이리라. 갓 태어난 아가의 볼살처럼 부드러운 우윳빛을 띤 꽃잎이 허공에서 나풀거리며 하강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꽃비가 되어 하르르하르르 내려앉는 것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오면서 가슴이 저릿해진다.

 

다른 해 보다 봄이 일찍 찾아왔다. 지구 온난화로 해마다 겨울은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져서 이제 한반도의 기후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변해간다고 한다. 2021년의 봄꽃 개화는 예년에 비해 전국적으로 빨라졌으며 남부 지방은 2~3, 서울 지방은 9일 정도 빨라졌다. 대구경북은 5~8일 빨라졌다고 하는데 느낌으로는 보름 정도 더 빠른 것 같았다. 예년에는 개나리가 먼저 피고 진달래가 핀 후 벚꽃이 차례로 피었는데 올해는 그 순서가 사라지고 한꺼번에 함께 피어났다. 시절이 어수선하니 꽃피는 순서도 헝클어진 것 같다.

 

2021324, 3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우리 지역인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있는 파미힐스CC로 친구들과 라운드를 나갔다. 벚꽃 명소로 소문난 이곳 진입로는 이미 만개한 벚꽃이 산길을 흐드러지게 밝히고 있었다. 이곳의 벚꽃 길은 자동차로 15분가량 걸리는 직선에 가깝게 굽어 나가는 산능선 도로로서 길 양쪽으로 일정한 간격의 키 높은 벚나무가 규칙적으로 서 있다. 코로나19의 거리두기 방역 수칙을 지도하는 안내 요원들이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고 예약자만 확인하여 통과시켰다. 도로상의 정차나 하차는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우리 일행은 들어가면서 차창을 통해 보이는 벚꽃 터널의 아름다운 절경에 넋을 빼앗겼다. 해마다 보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매료되고 만다. 라운드를 끝낸 후 클럽하우스 창밖으로 만개한 벚꽃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우리는 나지막한 탄성을 연이어 질러 댔다.

 

벚꽃을 일본의 국화라고 여겨서 한때 멀리 하면서 벚나무를 베어내기까지 한 적이 있었다. 일제 식민시대에 대한 묵은 원한과 한일 위안부 문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 등으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혐오감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고 가을에 피는 노란 색의 국화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잠시 화려하게 피었다가 며칠 가지 못하고 떨어지는 벚꽃처럼 일본이라는 나라는 잠시 부강하였다가 몰락할 것이라는 저주 섞인 예언도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감정적 편견에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는 서로 다른 가치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부도덕성과 야만성을 지적하고 나무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벚꽃의 아름다움을 부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미적 소유의 법칙은 일상적 소유의 법칙과는 다르다. 정치적, 경제적 소유는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사용하며 처분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미적 소유는 점유하고 사용하고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감상하는 것이다. 골목길 담장 위에 핀 줄장미의 경제적 소유는 그 집의 주인에게 있겠지만 미적 소유는 장미꽃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아름다움을 심미하고 완상하는 감상자에게 있다. 식물학에서는 벚나무의 원산지를 대한민국과 중국과 일본이라 한다. 아시아가 원산지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벚꽃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의 공동재이다. 이런 사정이니 우리가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일이야말로 누구의 눈치를 볼 일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껏 누려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꽃비 되어 내리는 벚꽃이 그러나 과연 아름다운 것이기만 한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무릇 모든 떨어지는 일은 슬픔이다. 생명이 끝나는 일은 애도해야 할 일이다. 물론 그것이 자연의 순환 과정의 일항이라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어쩔 수 없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그 이전의 과정이 끝난다는 것은 하나의 종말로서 슬픈 일이다. 벚꽃 잎이 떨어져 내리는 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꽃비 되어 내리는 벚꽃 잎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감동하는 우리의 마음은 잔인한 것인가? 아니다.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면서도 떠나가는 연인의 뒷모습은 슬픈 모습이어서 더욱 아름답다. 꽃비 되어 내리는 벚꽃 잎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자연의 위대한 섭리와 경건한 순환에 대한 외경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우리는 꽃잎의 종말을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로 가는 꽃잎의 슬픈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시심(詩心)이 있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곧 시인이다. 아름다움은 세상 속에 있는 슬픔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봄날 또한 그러하다. 봄날은 꽃비 되어 떠나기에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슬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