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일가붙이 와룡아재가 늦은 장가갈 때 어머니는 도토 리묵을 쑤었다 도토리가루를 담은 자배기의 물을 여러 번 갈아 떫은맛을 우려낸 뒤 가마솥에 불을 지펴 나무주걱으 로 젓고 또 저어 걸쭉한 묵이 되면 함지에 퍼 담아 식혔다 어린 나는 구경만 했지 맛도 못 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니는 쪽찐 머리에 똬리를 받친 뒤 함지묵을 이고 길을 나섰다 한 손에는 한사코 따라붙는 어린 내 손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함지를 잡은 채 언 강 얼 음장 위를 건너 사십 리 먼 길 걸어 아래홈실로 갔다 개울 가 촌길 마른 풀잎 위에 앉아 잠시 한숨 돌릴 때 나는 너덜 너덜한 똬리를 손목에 끼우고 큰 팔찌처럼 빙빙 돌리며 놀았다 어머니가 집안을 떠받치는 똬리인 것도 모른 채 까맣게 코를 훌쩍거리며 놀았다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문학의전당刊)에서·약력 :1949년 경북 왜관 생, 198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