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6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2016]

김주완 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

김주완 2016. 4. 7. 15:27






 


 


 

목차

김주완
1949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나 198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구름꽃』 『어머니』 『엘리베이터 안의 20초』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 『그늘의 정체』, 카툰 에세이집 『짧으면서도 긴 사랑 이야기』, 저서 『아름다움의 가치와 시의 철학』 『미와 예술』 외, 논문 「시와 언어」 「시의 정신치료적 기능에 대한 철학적 정초」 외 다수가 있다. 시집 『그늘의 정체』가 2015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되었다. 예술철학을 전공한 철학박사이다. 대구한의대 교수, 대한철학회장, 새한철학회장, 한국동서철학회장을 역임했다. 한국문협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칠곡포럼 공동대표, 한국문협 경북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차례

제1부 개망초
개망초 11
반짝이는 어둠
골다공증
푸슬푸슬
말을 뒤집다
술맛, 물맛
착시, 울안의 돌배나무 1
옹알이 3
우산 2
워터코인
버려진 가식(假飾)


울·

제2부 주역 서문을 읽다
디딤돌
너라는 정물
너를 약칭하다
물소리를 그리다
주역 서문을 읽다
놀이에 들다 1
거울
구름 요리
방울토마토를 디자인하다
편백나무 숲 2
바람의 길 2
꿈꾸는 화병 5
신발 1
숫돌·

제3부 목어(目語)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비늘 때문이다
아지랑이 4
가벼운 것들이 위로 간다
그늘에서 피는 꽃
목어(目語)
정류장의 봄
오월
꿩의바람꽃 2
분꽃
꽃과 열매의 거리 4
꽃 지는 날은 슬퍼요
하지 2
열대야
씨앗

제4부 겨울 갈대를 설시하다
선잠 2
거부반응 1
겨울강 2
겨울 일몰 7
그림자
탈피 4
감전 1
눈 오는 밤 6
여백 2
나뭇가지 5
무릎 담요
겨울 갈대를 설시하다
겨울 깊은 밤 1
월동준비 5

해설 두 개의 시선으로 / 고봉준


책 속으로

시집 속의 시 한 편


주역 서문을 읽다
― 경당일기 을묘년(乙卯年, 1615년) 7월 병오(丙午, 1일)

400세 조선 경당(敬堂)이 900세 송나라 정이(程?)를 만나는 아침,

어제는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굵은 비의 혀가 만 가지 단서를 일으켜 참과 거짓의 경계를 가르니 지극히 큰 밝음이 어둠을 밀어냈다, 꿈속에서 서애 류 선생을 뵈었다

닭이 울어 새벽에 깨었다, 다시 잠들 수 없어 주역 서문을 읽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걸어 묻는다, 선생의 선생은 말을 콩처럼 골라서 답변을 하는데 분별이 어렵다, 하늘과 땅의 정적이 둥글게 부풀어 일어서고 있다

오래도록 가물다가 비가 내리니 모든 백성이 모를 옮겨 심는데 검은 머리 아이와 흰머리 늙은이가 논길에서 기뻐하며 함께 손뼉을 쳤다, 지난 봄의 일이다

마음은 계란과 같으므로 인(仁)은 곧 생(生)하는 성(性)이다, 마음이 살면 길(吉)과 흉(凶)이 한 몸 안에 있어 천하의 걱정이 앞을 향하니

주역 서문을 삼독(三讀)하면 둔갑을 한다고 미욱한 자들이 믿고 있다, 싸리울타리 너머가 숲이고 어둠이다, 아 두려운지고 깜깜한 내일이여, 대업을 내는 사람이여

머리를 빗지 않았다, 마음만 가지런히 빗고 족인(族人)의 초대에 갔다가 날이 저물어 취해서 돌아왔다, 일전의 일이다, 때는 처음부터 하나만 있지 않으니

주역의 말은 질문이고 대답이다, 만물은 변하기에 변하지 않음에 붙어 있다, 변화의 근본은 간단하다, 다음인 지금이 변화이다, 앞과 뒤가 없어야 불변이다

듣고 말하는 서책(書冊)은 사람이다, 소리가 없는 데서도 듣는 듯이 하며 얼굴이 없는 데서도 보는 듯이 해야 하느니, 삼천 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비 오고 해 진다, 달 뜨고 새 난다, 뿌리 있는 자만이 꽃을 피우느니, 피지 않은 꽃은 꽃이 아닌지라    


출판사 서평

세계/대상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부정적 현실에 대한 시적 비판을 수행하다

198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김주완 시인이 등단 33주년을 기념하여 『주역 서문을 읽다』를 펴냈다. 2년 전 출간했던 시집 『그늘의 정체』가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젊은 시인들 못지않게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는 김주완 시인은 대구한의대 교수, 대한철학회장, 새한철학회장, 한국동서철학회장, 한국문협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칠곡포럼 공동대표, 한국문협 경북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주완의 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에는 자연친화적인 상상력과 세계에 대한 희망의 이미지가 관통하고 있다. 그것은 시집의 처음과 말미에 각각 “나는 믿는다 소복처럼 하얗게 점점한 개망초꽃들 환하게 다시 필거라, 나는 믿는다”(「개망초 11」)와 “깊은 겨울밤 먹빛 물이 들며 자란, 몽실몽실한 이른 봄을 만날 것이다, 작은 앞발을 치켜들고 불쑥 일어서는 봄을”(「겨울 깊은 밤 1」)이라는 진술이 배치된 것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자는 죽음을 극복하고 소생하는 식물의 생명력을, 후자는 엄혹한 겨울을 이기고 일어서는 동물(‘곰’)의 성장을 각각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김주완의 시에서 식물성 이미지는 양질 모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삶에 관해 이야기할 때 시인의 언어에서는 쓸쓸함이 묻어나지만, 자연적 세계에 관해 노래할 때에는 희망적인 이미지가 약동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김주완 시인이 자서(自序)에서 시인은 ‘시는 모두 잡종이다. 잡종의 산물이 시다’라는 말로 설명했듯이 김주완의 시세계는 일관성보다는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한 시인의 시세계를 면밀히 살피면 대개 삶이 위치한 공간에 따라 시적 대상은 달라져도 작시법이 큰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드문데, 김주완의 시는 차이가 두드러지는 변화를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시인이 각 시편마다에서 발화방식 등의 형식적 요소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김주완의 시적 관심은 일상적 삶에 대한 성찰에서 세계와 사물의 이면에 은폐된 풍경을 발견하는 시적 발견,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하다. 
 
김주완의 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에는 세계/대상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시적 비판, 즉 오늘날의 서정시에 부여된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실상 한 시인의 시세계에서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두 가지 시선이 김주완의 시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이 두 가지 시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김주완의 시의 미덕은 이 시선들을 절충하지 않는다는 것,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손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