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발상과 시적 역발상
송 희 복(문학평론가ㆍ진주교대 교수)
서정시가 죽은 시대라고 한다. 현대시에 있어서 서정시의 위상은 언제나 유치하고 천박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본다. 서정시가 감정 중심의 언어로 기울여져 있기 때문일까? 그러면 그 반대편에 놓인 이성 중심의 시정신은 또 어떠한가? 주지적인 형태의 실험 시, 과격한 구호 같은 정치 시도 우리는 역사적인 경험에 따라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실험적인 것이 지적인 것으로 포장되고, 정치가 사람을 살판나게 하는 게 아니라 ‘죽을 판’으로 잘못 이끄는 경우도 있지 않았나? 나는 시의 기본과 품새를 서정시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는 김주완의 시에 대해 각별히도 친화적인 감정을 함께하고 있다.
김주완의 시집 『그늘의 정체』를 볼 때 단박에 느낌이 전해오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니라, 순환하는 계절의 감각이 단연 빛이 나 보이는 시집이란 것이다. 이 시집의 전체적인 구성을 볼 때 비교적 뚜렷이 보이는 이미지라는 것은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로 이어지는 순환적인 사계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의 시집에는 계절마다 독특한 예술적인 취향을 나타내온 동아시아적인 기승전결 식의 순환 감각이 있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겨울이면 겨울……. 한 부분을 잘라내어서 극화된 감정을 절제 있게 얘기한다는 것은 서정시로선 언어의 돋을새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시인의 선적(禪的)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선적 취향이란, 다름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일종의 역발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주완의 이번 시집은 우리나라의 옛시조나 일본의 전통 단카[短歌]와 같이 동양적인 서정시의 품격을 유지하는 전통 시의 계보에 포함될 수도 있다.
그래 그래
너 돌아왔구나
이 환장할 봄날
치맛자락 들썩이며
울긋불긋 꽃순 쏟아내는
네 여편네 화냥기
싹둑 잘라내려고
벼린 단검 품에 품고
형형한 눈 번뜩이며
너 돌아왔구나
그래 그래
―「꽃샘추위 1」 전문
꽃샘이란,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관습적인 비유의 표현이다. 꽃이 피는 걸 시샘해서 부는 바람이나 추위를 말하는 것인데 그 자체로 시적인 표현이다. 비록 죽은 은유이긴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이 시에서 ‘환장’이란 말이 재미있다. 눈이 뒤집힌다는 것보다 강한 표현이다. 환장(換腸)은 눈이 뒤집히는 게 아니라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거다. 이 말과 잘 호응하는 건 “네 여편네 화냥기/ 싹둑 잘라내려고”라는 표현이다. 꽃샘추위가 이미 의인법인데, 여기에서는 두 겹의 의인화를 지향하고 있다.
시편 「꽃샘추위 1」은 만연체의 단형시이다. 만연과 단형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다. 이 시는 제3행과 제8행까지 한 문장을 구성하고 있다. 복잡한 한 문장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모순적이고 복문(複文) 지향적인 표현 방식은 김주완의 이번 시집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봄비 1」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 시를 굳이 인용하지 않겠지만, 단형시를 추구하면서도 복잡한 구문을 지향한 이 시는 ‘쓰다듬다’와 ‘스며들다’의 대위 방식을 통해 봄비의 지닐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음의 시편을 살펴보자.
수많은 여인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입니다.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저 살결 너무 고와 차마 손대지 못하겠습니다. 사람마다 한때는 저런 사람 있었겠지요.
―「벚꽃」 전문
보다시피 매우 감각적인 시다. 첫 문장부터 화려한 은유의 기상(奇想)을 보여준다.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역발상의 극치다. 똑 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건 아이러니가 아닌가. 일종의 낭만적인 아이러니와 같은 것이다. 노발리스(Novalis) 같은 독일 시에 있어서의 ‘낭만적 아이러니’는 언어를 통해 파괴와 생성을 거듭하는 원리로 작용한다. “사람마다 한때는 저런 사람 있었겠지요.” 이 미묘한 표현 속에 ‘낭만적 아이러니’의 미묘함이 있지 않을까. 두 번째로 적시된 사람은, 다름 아니라, 꽃 같이 젊은 시절의 ‘사람’이다. 파괴와 생성을 거듭하는 순환성의 원리를, 시인은 벚꽃의 만개(滿開)에서 찾는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세계는 낭만화 되어야 한다.”라는 명제를 우리로 하여금 되새김질하게 한다.
볕에 살이 있다
남새밭으로 쏟아지는
사금파리처럼 날카롭고
따가운 볕살
상추도 쑥갓도 살을 맞아
몸을 비틀면서 자란다
온몸에 살이 꽂힌 오이는
전신을 배배 꼬면서 길어진다
초여름 점심 풋고추를 따러 나간
아낙의 등에도
한 가득 내리꽂히는 뙤약볕의 화살
따끼따끼한 통증에 땀방울이 솟아
씨방 같은 가슴으로 터져 오르는 한숨
마음을 후비는 살의 발작 뜨거운
남새밭
―「남새밭에서 1」 전문
여름은 만물을 키우는 계절이다. 이 시는 여름날 뜨거운 볕살의 이미지를 잘 표현함으로써 왕성한 생명력의 기분, 후덥지근하면서도 건강한 계절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날카롭고 따가운 볕살, 살을 맞는 남새, 뙤약볕의 화살, 마음 후비는 살의 발작……. 살은 성장을 촉진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분위기 있는 계절감 하나로 시가 되는 좋은 시이다. 채소 혹은 야채의 토박이말인 남새라는 시어도 매우 정겹다. 이 낱말은 한때 경상 방언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전국적으로 거의 사어화(死語化) 되었다. 이것의 고형(古形)은 옛말 ‘나마새’다. 여름에 관한 소재의 시라면, 여름 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시든 채 긴 낮 죽은 듯이 보내도
달 뜨면 맞을 수 있어
좋겠다
어둠 아래 노랗게 수줍은 몸
한껏 열 수 있어서
좋겠다
깊은 밤, 달맞이꽃
꽃잎 속에 달덩이 품어 안고
숨찬 허리 자꾸 구부러진다
―「달맞이꽃 1」 전문
눈이 부셔서
눈이 부셔서
속 보이고 말았습니다,
아찔한 현기증으로
나팔꽃잎 벌어지는
여름날 아침
―「속 1」 전문
여름 꽃으로 잘 알려진 달맞이꽃과 나팔꽃을 소재로 한 시편들이다. 먼저 달맞이꽃을 노래한 앞의 시를 보자. 잘 알다시피, 달맞이꽃은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시드는 노란 꽃, 7월에 피는 성하(盛夏)의 꽃이다. 꽃이 달을 맞이한다는 것은 일종의 동기감응이다. 동기감응은 서정시의 고유한 원리이다. 자아와 세계가 기막히게 합치되는 그 순간에 서정시의 꽃 한 송이가 탄생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탄생의 원리를 이야기했다. 말라르메는 만물조응이라고 했고, 조지훈은 우주 생명의 본질이라고 했다. 바슐라르는 “꽃이 몸을 열면, 세계도 몸을 연다.”라는 경구를 남기기도 했다. 요컨대, 꽃과 달은 관계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나팔꽃을 노래한 두 번째 시. 앞의 시처럼 동기감응의 시적 이치가 스며있다. 나팔꽃은 눈이 부셔 속 보이다가 ‘홀황’의 순간에 마음 깊숙한 곳까지 비추어진다. 이 시에서 말하는 “아찔한 현기증”은 화자의 감정 상태를 극화한 표현이다. 이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꽃 멀미’다. 꽃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진한 향기에 취하여 일어나는 어지러운 증세이다. 꽃 멀미는 서정시의 황홀경이기도 하다.
엄지와 검지로 가를 꼭꼭 눌러
중년의 어머니는
둥글게 둥글게 송편을 빚었다
송편 한가운데
검지와 중지 끝을 꼬옥 눌러
가지런한 분화구를 만들었다
바람 피해 의탁할 수 있는
안온한 둥지,
어머니 이승 뜨시고
그 송편 보얗게
밤하늘에 떴다,
밤길 넘어질라 밝히고 있다
―「추석달」 전문
시적 화자의 추억의 세계는 송편과, 송편처럼 생긴 추석달을 통해 곱게 곱게 언어의 수(繡)가 놓이고 있다. 화자에게 있어서는 어릴 때 어머니가 빚었던 송편이야말로 이제 어머니의 혼백으로 뜨는 추석달이 된다. 이것은 과거의 추억이 현재화(顯在化)된 물상으로서 초월적인 언어의 주력(呪力) 같은 것을 지닌다. 아무튼, 이 시를 볼 때 세상은 혼연일체가 된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가지고 싶은 단풍잎이
꽃뱀처럼 어둠 속을 빠져나가고
검은 숲에서 담배 한 개비 불을 붙였다
검지와 중지 사이
빨갛게 불꽃으로 타들어가는
느낌표 하나, 반짝
숲의 어두운 몸에 구멍이 뚫린다
―「가을밤에 찍는 느낌표 1」 전문
이 시의 소재는 본디 자연의 인화(燐火) 현상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가을밤에 찍는 느낌표 하나가 단풍잎이 변형한 결과였다는 건, 시인의 상상력이 매우 낭만적인 발상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반짝거리는 느낌표 하나는 반딧불이라고 해도 좋고, 속신적(俗信的)적인 의미의 도깨비불이거나, 신비감이 적이 감도는 혼불로 연상해도 무방하다. 과학기술적인 차원에서 볼 때, 도깨비불은 밤에 들판이나 강둑 근처에 불빛이 명멸하는 현상이다. 혼불이란, 과학기술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옛날 호남 지역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기 얼마 전에 혼이 몸에서 빠져 나간다고 믿었다. 그 혼은 종발만 한 크기의,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고 여겼다.
한 생을 살고 나면 누구든 모과나무가 됩니다
파이고 찢기고 부러진 곳에 딱지 앉고
문둥이 손처럼 뭉텅뭉텅 옹두리가 남아
그 속 깊이 험한 바람을 재우고
천둥 치고 비 오던 밤을 가두며
고단한 열매를 툭툭 떨어뜨리는 모과나무
단단한 침묵이 됩니다
누구든 한 생을 살고 나면
겨울나는 모과나무의 떨어지지 않는
그늘 딱지가 됩니다
―「딱지」 전문
이 시는 ‘겨울나는 모과나무’의 시적인 속성을 노래한 것이다. 물론 시인의 상상력은 삶의 경험과 자장(磁場)에서 얻어진 절실한 것이 된다. 겨울은 결실된 것을 저장하는 시간의 상징성을 가진다. 시상은 딱지, 옹두리, 모과나무의 단단한 침묵, 겨울나는 모과나무의 떨어지지 않는 그늘딱지로 점층화된다.
여기에서 우리말 공부가 좀 필요하다. 딱지는 잘 알듯이, 상처의 자리에 생긴 껍질이다. 옹두리는 알 듯 말 듯한 시어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불퉁해진 것”이라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 ‘그늘딱지’는 또 뭔가. 이것은 시인의 조어다. 굳은 것처럼 보이는 그늘진 곳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김주완의 겨울 시편인 「딱지」는 오랜 연륜의 힘이 아니고선 쓰기 힘든 시다. 그의 시가 겨울의 단계에 이르러 웅숭깊은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겨울은 인생에서 원숙한 노년의 단계에 해당한다.
시인의 시 가운데서도 저물어가는 해넘이의 풍경은 휘황한 사유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인간은 일쑤 죽음을 통해 삶의 완성된 경지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시인은 해넘이의 이미지를 통해 인생을 그윽이 바라보는 관조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음은 가을의 풍경으로 묘파된 해넘이의 시편이다.
거둘 것 없어 나를 태운다. 약한 불에 타닥타닥 볶아 태운다. 동백나무 숲을 떠나온 동박새 한 마리, 써늘한 가을 저녁, 뾰족한 부리로 서녘 하늘을 찢으며 날아간다.
―「가을 석양 6」 전문
단아한 느낌을 준다. 가을 석양은 이 시의 원관념이다. 이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으로서 “약한 불에 타닥타닥 볶아 태운다.”라는 묘사가 힘을 얻는다. 그리고 나머지의 비교적 긴 문장은 원관념의 보조관념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보조관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가을과 석양의 이미지가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은 조락(凋落)의 이미지이기 때문일까?
화르르 타오르며 꺼져가는 저 불길
아름답다
차갑고 깜깜한 어둠
밀물처럼 몰아오기 때문이다
까맣게
지상의 모든 것 하나 같이 감싸 안기에
부끄럽고 더럽고 사악한 것들
남루한 기억들 모두 다 묻어버리기에
꽁꽁 얼려 꼼짝 못하게 가두어버리기에
저 어둠, 저리 아름답고 몽롱하다
―「겨울 일몰 5」 전문
죽음이 삶의 완성이라면, 시인은 완성의 의미를 풍경의 완미함에서 본다. 사계의 순환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겨울의 해넘이가 흔히 죽음으로 말해지곤 빗대어지고는 하겠지만, 긴 터널의 어두움 끝에 봄의 소생이란 것이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아름다운지 모른다. 사람이 죽어서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일부가 되는 것도 물론 아름답지 아니한가? 여기에 소멸과 생성의 원리가 자리한다. 시인의 낭만적 발상에, 시적 표현의 역발상이 가세하는 것이다. 이 역발상을 가리켜 결코 논리적으로 말해질 수 없고, 오로지 시적으로만 말해질 수 있는 기상(奇想)이라고 해도 좋다.
김수영의 어법을 빌린다면, 서정시가 죽은 시대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21세기 우리 시단에는 여전히, 서정시의 본령을 지키는 시인들이 있다. 그 가운데 김주완은 낭만적 정열을 지닌, 시적 역발상의 극치를 보여준 시인으로 가장 먼저 손꼽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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