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당선작품]
머리를 빗으며 (외 2편)
최인희
도끼빗이 머리카락을 길게 당긴다
멈춰버린 자리에서 앙탈을 부리며
밀려나온 등을 밟는 머릿결
제 자리 지키려고 애써보지만
상처만 남기고 내동댕이쳐진다
소용이 끝나버린 저들
벗겨진 무르팍을 돌아볼 여가도 없이
뒤집힌 풍뎅이가 일어나 말없이 걷는다
조금 일찍 태어난 언니가 다리를 걸어도
눈을 감고 한없이 삼켜버린다
한 올 한 올 풀어본다
쫑알대는 마디마디에 설움이 복받친다
창포가 위로하며 다가와
총총한 건반 위를 훑어 내린다
찰랑거리는 멋이 스카프처럼 날린다
회상
등 뒤로 떨어지는 설움이 비늘 같다
정류장 출구로 말없는 작별을 남긴 지
서른 해
수화기 속의 오랜 목소리에 밀려
상봉한 아들의 할머니
조금은 익숙한 정류장 앞으로 뾰족구두를 버리고
운동화에 몸을 실은 세월이 끌려온다
돌아다보는 허망한 날들을
땅이 꺼지게 읽어 내려간다
커피, 율무, 칡차
석 잔을 넘겼다
작정한 설움을 책갈피 속으로 접어 넣는다
미안함을 담은 봉투 하나를 남기고
같은 정류장 출구 앞에
돌아보지 않는 구부러진 모습에
머뭇거리며 구르는 낙엽이 된다
채워지지 않는 빈곳을 넘어서 간다
뼈마디
효사랑요양병원 601호, 치매 환자실
사라진 기억의 나이테에 돋은 올올한 가시가
흐릿한 시선으로
석고보드 천정에 매달린 형광 불빛을 찌르고 있다
문득 병상을 내려선 할머니 깨금발에
허리춤의 쌈지가 출렁거리며
동굴 같은 전신이 공명한다
무릎에 당도한 바람은 시린 마디 사이를 파고드는데
마른 뼈마디 꺾이는 소리가 밤마다
시트 모서리에 바람을 일으키고
멈춰버린 방아깨비 다리처럼
울렁이던 마음의 마디들 굳어 버린지 오래여서
편할 텐데
모처럼 면회 온 아들 며느리를 아저씨 아지매라 부르는
창백한 얼굴에 피는 벚꽃 같은 웃음이
한 세월을 건너온 나룻배의 젖은 난간 같다
뼈마디 닳도록 살아온 날들의 변색으로
검버섯 눌러 붙은 손등이 겨울 부처손 같은데
바지런을 떨며 한 세월 지나온
그 손, 손가락 뼈마디가 일몰처럼 풍화되고 있는
노인은 아직 고무줄 같은 이승에 있다
[심사평]
최인희 님의 수편의 시작품 중에서 <머리를 빗으며> 외 2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최인희 님은 경북 칠곡군에 계시는 시인 김주완 교수님의 추천이다. 최인희 님은 칠곡의 왜관읍 <구상문학관>에서 수년 동안 시창작의 연마를 쌓아온 여류시인이라고 한다.
<머리를 빗으며>는 6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연에는 머리카락을 빗어내리는 빗질의 형상화이며, 제2연에는 머리털의 생존경쟁사상을 추구하였고, 제3연에는 머리털 손질 후의 외관상태를 노래하였으며, 제4연에는 머리털의 상하관계상황을 그리고, 제5연에는 머리털을 의인화한 세계를 그렸으며, 제6연에는 머리털 단장 후의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회상>은 30년 만에 상봉하는 모자(母子)의 애틋하고 안따까운 사연을 통해 지난 기억을 회상하고 있으며, 또 <뼈마디>는 한 요양병원의 치매 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노인의 지난 세월과 오늘의 서글픔을 섬세하게 투영시키고 있었다.
최인희 님은 작품의 시맥이 크고 탄탄하여 앞으로 깊고 담대한 시세계를 구축하리라고 믿는다.
<심사위원 : 채규판ㆍ김송배ㆍ권숙월ㆍ김석철ㆍ허만욱ㆍ金海星>
[詩 당선소감]
존재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시에 혼신을 바칠 터
최인희
초등학교시절 번번히 수학성적은 중간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국어성적은 최상이 나오는 저에게 선생님께서는 칭찬과 걱정을 함께 해주셨던 생각이 납니다. 그것을 어쩌면 소질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쁘게 살면서 간간이 하는 독서 이외에 남의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야겠다는 작정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러다 중년이 된 나이에 어쩌다 시를 접하게 되었지만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찾아간 곳이 구상문학관이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시 동인 '언령'은 저에게 너무나 큰 성취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연중무휴로 주 1회 3시간씩 이어가는 스터디는 조금씩 시의 늪으로 저를 끌어들였고 한 편씩 쌓여가는 습작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저의 은밀한 재산이 되었습니다. ‘시는 눈이 먼저 뜨여져야 손이 뒤따라간다’는 말에 비추어보면 저는 아직 눈을 뜨는 단계에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습작시를 항상 진솔하게 이끌어주시는 김주완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함께 격려해 준 언령 회원님들께도 무한한 영광을 돌립니다. 당선이라는 이 영광에는 copywriter로 일하면서 언제나 제 시의 첫 독자가 되어주는 아들의 한결같은 격려가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나무도 자리를 잘 잡아야 무탈하게 자라듯 시의 길잡이를 잘 만나 이제 등단이란 문턱을 넘게 해주신 <한국시> 김해성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쉼 없이 걷겠습니다. 늦은 출발이고 시작이지만 시의 길에 영혼을 불사르겠습니다. 존재의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경건한 작업인 시작(詩作)에 혼신을 바치겠습니다.
* 1958 경북 칠곡 북삼 출생
* 경상북도 자원봉사 홍보기자, 낙동문학회 회원,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회원, 현대작은도서관 회장
* 주소 : 경북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금오현대아파트 102동 1005호
* 휴대전화 : 010-6586-3508
* 이메일 : cih3508@hanmail.net
‘언령’_최인희 시인 월간 『한국시』신인상 당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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