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름, 속살을 보이다 구재기 똑바로 몸을 돌려 맨 처음 태어난 자리 그대로 바로 바라볼 수 있으랴 이름과 모양에 마음하는 일 한지韓紙에 물이 스며들듯 아무려면 말할 것 하나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면, 온갖 작은 바람결에도 쫓기지 않는다 무얼 그리도 잇달아 간직하려고 애를 쓸 것인가 저 음흉한 담자색 꽃숭어리 찐득한 기름에 절여들 듯 본디 지니고 있는 생김이 저러하련가 꽃의 향기는 지나는 바람을 잡으려 하지만 빛 좋은 꽃숭어리, 그림자를 멀리 두려하지 않는다 그렇다, 향기 없다 하여도 꽃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깊고 그윽하더니 이리 사랑스럽고, 저리 곱살스러운 곱다란 꽃숭어리 이미 구속 되지 아니하고 한 번 더 눈을 돌리고 보면 푸른 가을하늘 밑의 시공에는 촉촉하니 혀끝으로 젖어드는 잘 익은 으름 하나 청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