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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시집_[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김주완 2023. 9. 28. 11:35

김인숙 시집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김인숙 시집_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김인숙 시집

 

문학의전당 시인선 367

김인숙 저자()

문학의전당 · 20230914

 

 

 

[시집 소개]

 

낯섦과 익숙함 사이에서의 시작(詩作)

 

2010월간문학으로 등단한 김인숙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67로 출간되었다. 김인숙 시인은 분방(奔放)하고, 비약적인 발상과 상상력이 첨예하면서도 안정적인 언어의 연금술을 보여준다. 이런 언어 감각은 오랜 연마 과정을 거쳐 다져진 것이다. 김인숙의 시가 낯설면서도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으로 그의 시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김인숙 약력]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2010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꼬리』 『소금을 꾸러 갔다』 『내가 붕어빵이 되고 싶은 이유가 있고, 논문 구상 시인의 생애와 왜관 낙동강이 있다. 신라문학대상, 한국문학예술상, 농어촌문학상대상, 경북작가상, 경상북도문학상, 석정촛불시문학상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경북문인협회 사무국장 및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의 말]

 

칠 년 만에 시집을 묶는다.

시집을 내는 의미를 찾지 못하여 지체된 시간이 너무 길다.

 

묶는 것은 매듭짓는 일이다.

매듭짓는 것은 떼어내어 작별하는 일이다.

의미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읽히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나 작별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안다.

 

20239

김인숙

 

 

[목차]

 

1

 

집에 간다 13/랜선 하이파이브 16/우비 18/풀잎의 집 20/22/월대 24/지상의 연주 1 26/저무는 설렘 28/꽃은 까무러쳤다가 핀다 2 30/비추(悲秋) 32/겨울새를 들이다 34/바람의 계절 36/마성(魔聲) 37/흡반 40/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1 42/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2 44

 

 

2

 

참빗질 47/모시 48/소리나무 49/새물내 50/따뜻한 침묵 51/홑마음 52/물내 53/꽃과 봄의/사이 54/봄결 55/새싹 56/물감 57/58/떠도는 섬 59/환한 어둠 60

 

 

3

 

물살, 화살, 햇살 1 63/물살, 화살, 햇살 2 64/황홀한 둘레 66/팽이의 기울기 68/지금은 창문을 열어야 할 시간 70/흔들림 소론(小論) 72/바람과 강과 새 74/비를 대하는 방식 76/나무의 중심은 78/나무는 나무의 몸을 모르고 80/모서리에 기댄 사람들 82/초록의 음계 84/물웅덩이 86/기억을 걷다 88/클라우드 90

 

 

4

 

룰루 93/등꽃 94/봄눈 95/다시 봄 96/출렁거리는 절벽 97/격자무늬 창 98/굳은살을 깎으면 99/저기 어디쯤 100/어머니의 집 101/아버지의 토성 102/방석 세탁 104/익숙한 풍경 106/문이 열리다 108/용의 알 110/방석 112

 

해설 이태수(시인)/113

 

 

[추천사]

 

이태수 (시인)

김인숙의 시는 발상과 상상력이 활달하고 발랄하면서도 섬세하고 첨예한 감성과 정치(精緻)한 언어 감각으로 참신하고 세련된 서정을 펼쳐 보인다. 낯설게 하기와 감정이입, 환상과 비약을 통해 빚어지는 풍경들은 은유의 옷을 입으면서 다채롭게 변주되고 내면화되는 매력을 발산한다. 시인의 감각과 감성이 거시적으로 열릴 때도 미시적인 현상들까지 거시적으로 그려지고, 거시적인 현상들마저 미시적인 모습으로 환치되는 특유의 발상과 상상력은 각별하게 돋보인다. 간결하게 정제된 일련의 시편들도 시적 묘미가 투명하게 반짝일 뿐 아니라 세상 이치와 삶의 예지가 녹아든 잠언들을 떠올려 또 다르게 눈길을 끈다. 자연현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심상(心象) 풍경을 자연이나 사물에 투영하거나 투사하는가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삶의 파토스에서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순응과 관용, 상생(相生)의 미덕을 보여주는 시편들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김주완 (시인·철학박사)

이 시집은 가히 존재론적이다. ‘집 속의 집집 밖의 집을 소환하여 안과 밖이 하나이다라는 불이론(不二論)으로 귀결시키는 논리 구조가 곧 존재의 본질적 해명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집이며 우주 내의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이 집이면서 동시에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간다는 통찰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통찰은 시 집에 간다뿐만이 아니라 수록된 시의 전편에 걸쳐서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허공의 심연도 언뜻언뜻 보인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도 철학적 사유에 능숙한 김인숙은 오성(悟性)이 잘 발달한 시인이다. 그것을 메마른 철학이 아니라 윤습한 시로 잘도 녹여내는 감성과 탁월한 시작(詩作) 재능 또한 갖추고 있다. 한국 시단에서 독보적 일가를 이룰 것이라 믿는다.

 

 

[책 속으로]

 

붉은 캥거루가 집에 간다

사막의 끝에서 날이 저물면 집도 집에 간다

 

집이 있어 집에 가고 집에 든 채 집에 가고 집이 없어도 집에 간다

 

집에는 엄마가 있고 엄마 속에 집이 있고 없는 집에도 엄마는 있다

 

나무는 선 자리에서 잠이 드는 노숙이여서

바람을 덮으며 등을 붙이면 눕는 자리마다 집이다

 

붉은 캥거루 새끼는

앞발로 안고 뒷발로 뛰는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엄마가 있는 집에 간다

 

엄마도 나도

집은 비를 맞아도 집이다

비가 새도 집이다

 

엄마가 없어도 엄마는 있다 갈 데가 없어도 갈 데가 있다

 

사막에 널린 게 집이지만

성장이 멈추지 않는 붉은 캥거루는

사막 끝에 있는 자기 집으로만 간다

 

추위에 얼어붙은

붉은 몸이 들 수 있는 집

든든한 꼬리가 받쳐 주는 집

 

엄마는 아무리 멀어도 엄마여서

때가 되면 바람도 집에 가고 안개도 집에 간다

 

세상 모든 것이 집에서 나와 집에 간다 날이 저물면 껑충껑충 뛰어서 가는

 

붉은 캥거루의 집에는

붉은 캥거루의

붉은 엄마가 있다

- 집에 간다전문 (제8회 석정촛불시문학상 수상작)

 

 

하이

까치집 같은 한동네에서 두 사람이 손바닥을 마주칠 때

 

당신은 양각 나는 음각 두 개의 도장이 다가와 서로에게 서로를 찍으면 맞춤같이 찰진 소리가 났지

 

, 맞아떨어지던 한때의 따뜻함

 

하이

이 나무 저 나무 우듬지의 서로 다른 까치집으로 멀어져서

이제 우리는 손바닥을 부딪는 흉내만 낸다

 

소리는 없고 동작만 있는 무성영화처럼

 

두 개의 발굽에 허공을 끼워 출렁출렁 줄을 타는 광대는 숲의 끝에서 오는 바람의 몸짓으로 흔들린다

 

바람은 먼 곳의 따뜻한 아랫목을 실어 오지 못하지

 

부딪칠 수 없어 체온이 사라진

수족냉증을 앓는 자의 조상은 파충류였을 것이다

 

어둠의 몸이 가장 두터워지는 동트기 전의 쟁반형 안테나는 은밀한 전파를 우주로 쏘고 가는 전파와 오는 전파가 부딪쳐 비밀의 문이 열리면 무한궤도는 모천으로 회귀하는데

 

교도소 접견실처럼 투명한 칸막이가

손바닥으로 오가던 속 깊은 따뜻함을 얼음인 양 가로막고 있다

 

, 도장 찍는 소리가 사라졌다

 

원시 지구에 두고 온 찰진 체온의 기억이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뜬다

- LANHigh Five전문

 

 

옮겨 다니는 자는 집을 짓는다

사람도 새도 집을 짓고

하루가 끝나면 거기로 돌아가 쉰다

너구리나 두더지처럼 동굴을 파서 잠자는 동물도 있다

물고기는 한적한 수초나 물때 낀 돌 틈에

하루를 쉴 거처를 정한다

그러나 풀잎은

스스로의 몸을 다른 이의 집으로 내어 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집을 짓지는 못한다

풀벌레의 집은 있는데 풀잎의 집은 없다

서서 일하고 서서 쉬는

풀잎은 참, 서럽다

바람에 시달리고 가뭄에 목마를 때

피해 가거나 찾아갈 방도가 없고

시든 노구를 누일 집이 없다

하늘 아래 바람 부는 대로

구름이 흐르는 대로

그저 선 채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난에 붙들려 발 묶인 이들은

풀잎의 신세다

잠시의 숙소조차 없는

선 자리에서 마른 몸이 무너져야 하는

풀잎은 집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노숙보다 헐벗은

집 없는 집이 풀잎의 집이다

- 풀잎의 집전문

 

 

같이 가자, 같이 가자, 손잡고 벼랑에서 뛰어내리자

 

오래된 보증서와 낡은 라벨이 붙은 올드 바이올린에서 맑고 가는 애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독에 갇혀 말간 물이 된 어린 남자아이의 긴 신음 소리 같았다, 뒷배가 불룩한 몸통 속에서 가물가물 흘러나오는 마른 손가락과 긴 팔의 색감 감치는 소리

 

물의 입자를 가진 세상의 소리들은 가문비나무로 흘러 올랐다

가파른 등고선을 넘는 물의 행군에는 자주 낙오자가 나오지만

고난을 이겨낸 소수의 맑고 낮은 소리들은 고산지의 체관부에 당도하여 삭풍을 몰아쉬었다

소리의 모천인 거기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바위 속으로 뿌리를 벋는 가문비나무는 사막을 걷는 수도사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모여 사는 숲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원이어서

소리의 입자들은 바람의 수도원에서 맨 처음 태어났다는 창조설 앞에서

연주자들은 옷깃을 여미며 경건해진다

 

눈물을 조율하여 시냇물 소리를 낸다는 하얀 곱슬머리 연주자를 안다

거룩한 제의에는 맨 처음의 검은 빛 울림을 바쳤다는 제사장을 안다

 

살아서 오백 년 죽어서 천 년을 부딪쳐야 소리가 트인다는

가문비나무에서 나와

죽음으로 인도하는 부드럽고 우아한 유혹의 소리를

밤을 새워 다듬던 중세의 장인

 

소리의 씨앗은 탄생과 죽음의 배아를 품고 있다고, 수도사는 검은 옷 아래 남몰래 거두어 숨겨서 갔다, 와서 부딪치는 소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력이 더 커지는 것이어서, 충만하는 소리는 날개가 돋아야 어둠의 양력이 생기는 것이어서, 마법의 줄에 매여 울타리를 넘은 연주자의 목에는 붉은 스카프가 매여 있었다

 

나뭇결을 휘어잡은 수질선이 음질을 닦는다

귀가 트이듯 소리도 트여야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음향판은 수명이 끝날 때까지 소리를 다듬는다

 

가문비나무의 낮은 속삭임은 수명이 끝나기 직전에 내는 딱 한 번의 소리여서

부드럽고 따뜻하고 색감 감치는 물살 같은 노래여서

천 년에 한 번씩 애기 소리를 내는

올드 바이올린이 그를 굽이굽이 벼랑 끝으로 데리고 간다

- 마성(魔聲) 전문

 

 

 

오래 보아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관계가 그렇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모를 때가 있다

사람이 그렇다

 

있는 게 없는 게 아닌데

생각하지 않는다고 잊는 게 아닌데

불안해질 때가 있다

 

눈으로만 보니 그렇다

저 깊은 아래 우물물을 퍼 올리듯

마음을 끌어 올려 읽어보자

새롭게

-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2전문

 

 

젖어서는 안 되지

슬픔에 빠지거나 우수에 무너져서는 안 되지

바람을 가르며 들판을 건너가는

진솔옷 하얀 칼날은 숨구멍이 있지

소통이란 결기를 꼬장꼬장 세워야 통하는 길

훨훨 나르며 반만년을 지켜온 할아버지의

젖지 않아 꼿꼿한 자존심

푸르다 못해 기어코 창백한 안색,

하늘이란 바로 그런 거지

- 모시전문

 

 

그늘 깊어 새를 들인 나무는 새소리에 젖는다, 숲의 배꼽마당에 새벽마다 빗물처럼 고이는 새소리, 푸른 물이 든 새소리는 나이테 파문 사이로 스며들어 켜켜한 목질 속에 자신의 무덤을 만든다, 굳어야 울림이 되는 소리, 하늘 아래 숨을 쉬며 하늘빛이 된 소리는 죽고 깎여서 마침내 악기가 된다, 떨림이 길고 맑은 소리나무의 품에 깃들어 나무가 된 새들이 후대에 자신을 남기는 방법, 편년체의 악보는 가장 푸른 나뭇잎으로 그린다, 통 통 통, 장구통이 되는 오동나무에 아침마다 새들이 모여든다, 안개를 헤치고 나무베개를 든 무령왕비가 긴 잠에서 깨어나 왕릉 밖으로 걸어 나온다

- 소리나무전문

 

 

팽이가 돈다

 

운동은 회전이고

살아서 도는 것은 기울기를 가졌음을 안다

 

경사면의 저쪽은 미끄러지고

이쪽은 급전직하, 떨어지기 쉬운 형국의 허공

 

머리 위의 몽고반점이 원을 그리며 돈다

태양이 움직인 거리가 붉은 반나절이다

 

파스텔톤의 안개를 허리에 두른

산복도로

골목길 담벼락 안의 혼곤한 가세가 아직

수면 중이다

 

기울기가 누우면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미끄러지거나 떨어질, , , 하나

팽이 위에서 서쪽을 향해 누워 있다

한때 푸르던 크레용 부스러기 따라 눕는다

 

지구가 돈다

- 팽이의 기울기전문

 

 

다시,

 

날개는 땅 위의 발소리가 아니어서

하늘을 날 수 있고

지느러미는 두려움의 단위가 아니어서

바다를 건널 수 있고

 

보리누름에 혼자 냉골에 누웠다

아팠다

날개도 지느러미도 없어

많이 아팠다

 

마음엔 마음이 약이다

 

겨우내 잿빛이던 산벚나무도

여린 눈, 뜬다

 

- 다시 봄전문

 

 

단물 샘솟는

예천에서 세상의 첫새벽이 열리고

소백을 깔고 앉은 어머니는 남해를 바라보며

너른 치마폭에 용의 알을 품는다

칠월의 태양이 이글이글 알을 굴리면

순도 높은 동살이 푸른 혈맥으로 흘러

알알이 감로 뻗는 몸의 당도가 날마다 새롭다

 

하늘 높이 푸른 치맛자락에서 살찌는 과육은

세상의 아침을 깨우는 갓밝이의 기운으로 오는데

사랑을 찾아 우주를 가로질러 온

천만 광년 전 가려움이 사과의 고운 볼에 앉으면

나비같이 부끄러운 홍조 진하게 연화로 핀다

 

삼강 보름달을 건지는

우주의 한가운데서 속부터 익는 것은

먹으면 늙지 않는 사랑이다

 

오천 년을 달려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용문 눈부시게 열리는 날

가지마다 달린 용란(龍卵) 실하게 부화하여

사람 사는 고을고을로 옥녀봉의 정기가 날아가고

백두대간을 뒤흔드는 범우리(虎鳴)를 따라

눈부신 은백의 새들

내성천 백사장에 훨훨 내려앉아 역사의 새 터전을 연다

 

비룡산, 회룡포 발복하는 산천에는 옥수 흐르고

하늘 냇가 여울목에서 붉디붉은 가슴으로 익는

동그란 용의 알, 해마다 더 굵고 달다

- 용의 알전문

    (2015 곤충나라•사과테마파크 개장기념 전국백알장 장원작)

    (2016 경북 예천군 <곤충생태원>에 예천군에서 시비를 건립함)

 

 

 

[출판사 서평]

 

김인숙의 시는 발상과 상상력이 활달하고 발랄하면서도 섬세하고 첨예한 감성과 정치(精緻)한 언어 감각으로 참신하고 세련된 서정을 펼쳐 보인다. 낯설게 하기와 감정이입, 환상과 비약을 통해 빚어지는 풍경들은 은유의 옷을 입으면서 다채롭게 변주되고 내면화되는 매력을 발산한다.

시인의 감각과 감성이 거시적으로 열릴 때도 미시적인 현상들까지 거시적으로 그려지고, 거시적인 현상들마저 미시적인 모습으로 환치(換置)되는 특유의 발상과 상상력은 각별하게 돋보인다. 간결하게 정제된 일련의 시편들도 시적 묘미가 투명하게 반짝일 뿐 아니라 세상 이치와 삶의 예지가 녹아든 잠언(箴言)들을 떠올려 또 다르게 눈길을 끈다.

을 주제로 한 시들은 삶의 보금자리이며 안식처인 집에 대해 다각적으로 성찰하면서 모성 회귀와 귀소 본능에 착안해 정신적인 본향의 참뜻을 일깨우며, 집이 없거나 있어도 본향으로서의 집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들에 연민을 끼얹는 휴머니티를 내비쳐 보인다. 자연현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심상(心象) 풍경을 자연이나 사물에 투영하거나 투사하는가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삶의 파토스에서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순응과 관용, 상생의 미덕을 보여주는 시편들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집은 생명체의 보금자리이며 안식처다. 움직이며 옮겨 다니는 생명체들은 어김없이 집을 짓고 깃들어 산다. 새 생명체가 이 세상의 빛을 보면서 맨 처음 만나는 세계 또한 집이다. 집에서 삶이 시작될 뿐 아니라 체험과 인간관계도 집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집은 몸과 영혼이 동화되게 해 내면성(內面性)을 감싸주는가 하면, 귀소 본능과 정신적 회귀를 추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 사실을 옮겨 다니는 자는 집을 짓는다/사람도 새도 집을 짓고/하루가 끝나면 거기로 돌아가 쉰다/너구리나 두더지처럼 동굴을 파서 잠자는 동물도 있다/물고기는 한적한 수초나 물때 낀 돌 틈에/하루를 쉴 거처를 정한다”(풀잎의 집)고 환기하면서 스스로의 몸을 집으로 내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집은 짓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풀잎에 각별한 연민을 끼얹는다.

 

풀벌레의 집은 있는데 풀잎의 집은 없다

서서 일하고 서서 쉬는

풀잎은 참, 서럽다

바람에 시달리고 가뭄에 목마를 때

피해 가거나 찾아갈 방도가 없고

시든 노구를 누일 집이 없다

하늘 아래 바람 부는 대로

구름이 흐르는 대로

그저 선 채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풀잎의 집부분

 

이 시에서 시인은 집 없이 살다가 죽어갈 수밖에 없는 풀잎에 인격을 부여해 , 서럽다는 표현까지 한다. 이 같은 연민은 사람들을 향해 가난에 붙들려 발 묶인 이들은/풀잎의 신세라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노숙보다 헐벗은/집 없는 집이 풀잎의 집”(같은 시)이라고 집 없는 집에서 살아야 하는 풀잎을 노숙자보다도 서러운 신세라고 본다. 역시 옮겨 다닐 수 없는 식물인 나무에 대해서도 나무는 선 자리에서 잠이 드는 노숙이어서/바람을 덮으며 등을 붙이면 눕는 자리마다 집”(집에 간다)이라고 거의 같은 맥락의 연민을 보낸다. 풀잎의 집이 보금자리이며 안식처로서의 집을 들여다보는 경우라면, 집에 간다어머니의 집은 정신적인 본향으로서의 집에 대해 한결 깊이 성찰하고 있는 시다. 집에 간다는 새끼주머니()가 있는 캥거루가 집에 가는 행위를 정신적 본향과 모성 회귀 의식에 녹이고 감싸 복합적으로 떠올리며, 어머니의 집은 정신적 본향과 진정한 안식처에 대한 연민에 무게를 싣는다.

- 이태수(시인)

 

 

[기본정보]

 

ISBN 9791158966089

발행(출시)일자 20230914

쪽수 140

크기 125 * 205 * 13 mm / 308 g

총권수 1

시리즈명 문학의전당 시인선

 

김인숙 시집 본문-[최종].pdf
0.41MB

[김인숙의 다른 시집들]

1시집 [꼬리] / 2시집 [소금을 꾸러 갔다] / 3시집 [내가 붕어빵이 되고 싶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