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음악·시낭송/사진

옛집(김주완)

김주완 2013. 11. 2. 22:00

 

    2013.11.2.토. 단풍 구경을 다녀왔다. 누님네와 동생네, 그리고 나, 5남매 내외 10명이 승용차 2대로 움직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렸다.

   도로변에 있는 옛집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갤2 스마트폰 촬영

 

  34년이 된 집인데 개보수 없이 아직 처음 그대로이다. 많이 노후하긴 했지만 대문도 처음의 나무 대문 그대로이고 차고의 셔터도 처음 그대로이다.

 

  이 집은 1979년에 생애 처음으로 신축한 반양옥형 전원주택(?)이다. 1979년 초가을에 입주하여 1987년 2월까지 살았으니까 새집을 지어서 7년 6개월을 살고 대구로 이사를 나왔다.

 

  당시에는 꽤나 잘 지었던 집이다. 냉ㆍ난방시설을 잘 갖춘 집이었다. 보일러실을 지하에 두었고 미제 ABC 버너를 썼다. 거실에는 소파를 놓고 양주를 채운 붙박이장도 있었다. 당호도 양수재(晹櫢齋)라고 지어 서각한 현판을 현관문 위에 걸었다. 승용차는 68년식 코로나 중고차로 출발하여 포니를 타다가  나중에는 로얄 살롱을 탔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전신주는 당시에 들판 가운데 들어서는 내 집만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었다.

 

  이 집에서 딸아이 셋이 초등학교를 다녔다. 큰딸은 중학교 1학년까지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훈련 받은 경비견인 'AGO'라는 이름의 독일산 셰퍼드를 키웠고 개집도 스라브를 쳐서 대문 옆에 따로 지었다. 사람이 서서 드나드는 높이의 개집이었다.

 

  이 집에 입주한 후 6개월쯤 지나서였을 것이다. 나는 십이지장 궤양과 천공성 복막염으로 수술을 받고 구미순천향병원에 일주일 정도(1980.01.23~01.30.) 입원하기도 했다.

 

  딸아이들도 이 집을 많이 그리워한다. 딸애들은 여름이면 아고를 끌고 낙동강가 모래사장에 나가 물놀이를 하며 놀았고 겨울이면 집 앞에 눈사람을 만들어 세워 놓기도 했다. 

 

  인근 주변은 많이 변했는데 추억 속의 옛집은 아직 그대로 있다. 거기 그대로 그 모양으로 있다. 생은 앞으로만 향해서 궤도 위를 달려가는데 추억은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양수재(晹櫢齋)라는 현판은 떼어서 짊어지고 다니다가 한 생을 지나 온 지금, 왜관 서재에 걸어 놓고 있다. 거기도 여기도 낙동강가이다. 물가에서 태어나 물가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