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자유주의/허유 하기락 선생 기념사업회

2025 학회_아나키스트 철학자 하기락의 자주인 사상_집담회 취지 및 자주인 단상_김 성 국(허유 하기락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김주완 2025. 5. 1. 20:21

 

1부 특별기획_(프로시딩 3~5)

 

집담회 취지 및 자주인 단상

 

김 성 국(허유 하기락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

 

 

 

 

본 집담회는 허유 선생께서 강조하신 자주인을 중심으로 혹은 기점으로 삼아 그 의미를 다차원적으로심화·확대해 보고자 합니다. 아나키스트이건 비아나키스트이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이념형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지향적인 자주인의 개념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예측불허의 좌충우돌이요 뒤죽박죽입니다. 문명이 만든 온갖 제도는 문제를 해결하여 개인을 보호하거나 구제하기보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어 개인을 짓누릅니다. 이제 개인 각자는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자주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가는 지혜를 깨쳐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 자주인입니다. 여기에 무엇이 더 추가되면 좋겠습니까? 허유 선생님의 자주인 사상이 오늘의 현실과 미래의 내일을 위한 만인의 깃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허유 선생께서 동지들과 함께 세우신 자주인의 깃발이 더욱 세차면서도 아름답게 펄럭이도록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다양한 바람을 모아 자유해방의 큰 기류를 만들어 봅시다.

 

한 아나키스트의 자주인 단상:

 

아나키스트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면 좋을까? 과거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 과격 혁명론자, 테러리스트, 반체제론자, 반권위주의자, 허무주의자, 급진 자유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 공상적-비과학적 사회주의자, 공산적-비현실적 공동체주의자, (새로운) 평화주의자 등등으로 불리었다. 외부의 적이 엄존하던 근대 혁명의 시대 혹은 군국주의나 제국주의가 횡행하던시절의 소수파 아나키스트들에게는 그런대로 어울리는 규정이다. 이제 세월은 흘러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아나키스트로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일찍부터 한국의 아나키스트들 그리고 허유 선생은 자신들을 자주인이라고 생각하였다.

1972년에는 한국 아나키스트의 총결집체로 [자주인 연맹]을 만들면서 허유 선생은 4인 간사의 1인으로 참여하였다. 대표 간사는 선배 아나키스트 최갑용선생이셨다.

자주인연맹의 강령은 아래와 같다.

 

1. 우리는 각자 자기를 주재하는 자주인이다.

우리는 자주인의 자유 의사로 연합한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코자 한다.

1. 모든 인간의 주권은 평등하다. 이 권리는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다.

우리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려지는 자로 인간을 구별하는 일체의 정치적 관념을 부정한다.

1. 우리는 여하한 수단에 의하건,

자기는 일하지 않고서 남의 노력의 성과를 가로채는 행동을 죄악이라 본다.

1. 자주인의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각인은 그 능력에 따라 일하고 그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

는 경제생활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1. 전 각항의 기본 원칙에 따라 장래할 자유 사회는,

각 지역 및 직능의 특수성에 따라 다양한 생활방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1. 우리는 각 민족이 역사적으로 전승한 고유문화를 존중한다.

동시에 여러 민족들의 다채로운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곳에 세계 평화를 지향한다.

 

상기 강령은 다소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지만, 자유주의, 평등주의, (비맑스주의) 사회주의, 세계주의를 지향하려는 그 기개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선배들의 꿈과 정신, 가치와 헌신을 새롭게 다듬어 다시 펼칠 때가 온 것 같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아나키즘의 가치를 추구하는 아나키스트는 하나의 인간, 개인, 개체, 주체로서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이에 나는 자주인이라는 개념이 가장 적합한 명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특히 허유 선생께서도 자주인을 언급하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혹시 허유 선생께서 언급한 니체나 하르트만/하이데거, 혹은 실존주의, 나아가 동양사상과 조선철학(특히, 원효와 화담)으로부터 자주인의 개념을 도출할 수는 없을까? 니체의 초인은 슈티르너의 유일자로부터 시사를 받은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동양사상의 핵심인 깨달음이 (아나키스트가 추구하는) 자유해방의 최고 경지를 의미한다면 동양의 도인, 구도자는 자주인이 아닐까?

 

자주인의 여러 모습을 우리는 문학, 철학, 종교, 영화 등 사회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각도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나 (예컨대, 교산 허균, 토정 이지함, 김삿갓 등) 혹은 상상/논픽션의 작품 속에서 (예컨대, 나림 이병주의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의 동정람이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의 불운한 조동팔 등) 어떤 인물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최근, 다소 기괴하게도, 박범신은 소설(2017) [유리 ?어느 아나키스트의 맨발에 관한 전설]에서 주인공 유리(걸식)을 아나키스트로 그린다. 유리걸식을 하면서도 그것을 벗어나려 했기 때문에? 빌붙지 않았기 때문에?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세속적 욕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박범신과 내가 생각하는 아나키스트가 서로 잘 들어맞지는 않으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주인의 정체성을 기능적 차원에서 동아시아의 五行에 입각하여 아래와 같이 상정해 본다. 정치적으로는 自治이고, 경제적으로는 自立이고, 사회적으로는 自然이며, 문화적으로는 自足이며, 종교적으로는 自信이란 특성을 갖는 五行人으로 규정해 본다.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자주인의 길을 나름대로 걷고 있으니 조금만 더 보태거나 노력하면 더 멋있는 자주인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자유해방을 성취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의 탐진치로?)부터 그리고 타자(의 구속과 간섭으)로부터 지배받거나 종속되지 않고, 내 스스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주체성과 책임성, 즉 주인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를 구속하는 온갖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와 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자주인은 우상숭배 없이, 天地人의 마음으로 살피며, 항상 自重自愛하는 사람이다.” 이 자리 이 순간의 우리 모임이 바로 자주인이 모인 自主人聯合社會가 아니겠습니까? 나와 너 안의 자주인을 더욱 믿고 더욱 키워봅시다.

 

 

[부록]

동양사회사상학회의 [사회사상과 문화] 27-4: 1~57 (2024)김성국 교수님과의 대담”(49)에 실린 내용으로서 향후 한국사회학이 추구해 봄직한 미래 연구방향의 하나로 제시된 것입니다. “동양사회사상학회 journal”을 입력하시거나 http://aeast.or.kr/을 이용하시면 읽을 수 있습니다.

 

“(6) 자주인의 사회학: 결정론적 구조주의 득세와 함께 인간 주체성은 비판과 거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격신의 아들이라는) 인간의 특권적 예외주의에 입각하여 생태파괴의 주범으로서 낙인찍힌 서구의 인간중심적 휴머니즘에 대한 거부와 함께 인간 주체성 또한 위험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全一的 생태주의 세계관과 AI가 요구하는 물아일체의 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이라는 막연한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실존하는 (唯我唯心) 唯一者로서 개인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발휘하면서도 천지만물과 공생공존하는 새로운 주체성이 필요합니다. 허유 하기락 선생이 제시한 자주인의 주체성이지요. 주체성은 人中天地一이라는 天地人合一의 소명 혹은 책임이라는 자기구속성을 개인에게 요구합니다. 각자도생의 의미를 자기 삶을 자기 책임 아래 자기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로 적극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호조협동은 자주인의 필수불가결한 생활양식입니다. 너도 나도 求道의 종착역에서 자주인을 만나겠지만, 나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이미 자주인입니다.”